▲연세의대 정신과 명예교수 민성길

19세기 중반, 서구의 의사들은 동성애를 죄라기보다 “뇌의 퇴행성 병”으로 생각하였고, 신체적으로 결함이 많고, 도덕적으로도 결함이 많다고 하였다. 의사들은 동성애에 대해 최면술로 치료하거나 전전두엽 절제, 전기충격 요법, 거세, 강제 불임 등 생물학적 치료를 시도하였다.

20세기에 이르러 프로이트는 동성애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이 제대로 잘 해결되지 못하여 정신성 발달이 미숙상태에 고착된 “노이로제” 즉 정신적 원인에 의한 신경병(뇌병)의 하나로 보았다. 이에 근거하여 그와 그의 제자들인 정신분석가들은 동성애를 정신분석으로 치료하였는데, 이는 1970년대까지 거의 유일한 치료방법이었고 수많은 연구논문들과 저술들이 나왔다.
1952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장애 진단통계편람 제1판」(DSM-I)에서 동성애는 진단적으로 사회병질적 인격장애(Sociopathic Personality Disorder)에 포함되었고, 1968년에 개정된 DSM-II에서는 성도착 범주 내의 성지남장애(Sexual Orientation Disorder)의 하나로 포함되었다.
동성애가 DSM-III에서 제외된 과정
1970년대에 이르러 미국정신의학회(APA)가 DSM의 개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활동가들이 동성애를 DSM에서 제거하라는 주장을 하면서 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1970년부터 매년 미국정신의학회 연례 학술대회장에 기습적으로 난입하여 격렬한 게릴라식 연출(guerrilla theater) 전술, 폭력적인 소리지르기 내지 난동부리기 등의 시위를 하였다. 미국정신의학회 내부에서는 동성애자인 정신과의사들의 눈물어린 호소도 힘을 보태었다.

게릴라식 연출이란 1965년 the San Francisco Mime Troupe가 사용한 게릴라식 대화법으로, 체 게바라의 정신에 기초하며, 당시 월남전 반대, 자본주의 반대를 목표로 시작되었던 시위 방식이다. 이는 미국에서 1960~1970년대 중반까지 급진적 사회운동으로 유행하였는데, 공공장소에서 “혁명적 사회정치적 변화”를 위한 집단퍼포먼스로 나타났다.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때때로 조롱과 풍자, 축제 분위기 조성, 항의, 나체 노출, 신성모독 행동, 터부시 되는 주제 등이 연출에 포함되었다.
1973년 당시 미국사회의 흑인, 여성, 노동자 등의 인권운동 분위기, 동성애자들의 폭력적 압력과 APA내 동성애를 옹호하던 회원들의 집요한 요청으로, APA이사회는 당시 개정을 준비하고 있던 DSM-III에서 동성애를 제외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일부 회원들이 반대하며 전 회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하였다. APA 회원 중 1/4정도가 투표에 참여하여 58% 찬성으로 제외가 결정되었다. 결국 1973년 동성애는 DSM-III에서 제외되었다. 이 결정을 미국 심리학회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워낙 이 사건이 유명하여 1977년 타임지가 다시 동성애가 병인지에 대해 1만 명의 미국정신의학회 회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는 1978년 타임지(February 1978 Vol. 111 Issue 8, p.102AB)에 “다시 병인가? 정신과의사들 게이에 대해 투표하다”(Sick Again? Psychiatrists Vote on Gays)라는 타이틀로 게재되었다.
응답자의 69%가 동성애가 정상적 변이라는데 반대하고 하나의 “병리적 적응”이라 하였고, 18%가 병적이 아니라 하였고, 13%가 불확실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수(73%)가 동성애자들은 일반적으로 이성애자들보다 불행하다고 보았고, 60%가 동성애자들이 성숙한 사랑의 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였고, 70%가 동성애자들의 문제가 사회의 낙인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해결해야 할 자신 내면의 갈등 때문으로 보았다.
그러나 동성애를 정신장애 분류에세 제외하는데 찬성하지 않은 정신과 의사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자아이질적 성지남”이라는 병명을 두어 원하는 동성애자들이 치료를 받게 해 주었다. 그나마 이마저 1987년 DSM-III-R에서 빠졌다. 이후 미국에서는 동성애는 정신장애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DSM-5에서도 동성애는 기타 성 관련 건강 문제라는 항목을 통해 동성애 치료가 가능하게 만들어 두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비판
이 제외(declassification) 사건은, 친동성애자인 로널드 바이어 같은 의학역사학자들 마저도 지적하듯이, 과학 단체가 과학적 진실보다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의해 굴복당한 매우 드문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일부 심리학자들도 이 사건에 대해 미국심리학회 자체의 “레오나 타일러 원칙”(Leona Tyler Principle)을 직접적으로 위반한 것으로 비판하였다.
이 원칙은 심리학자가 전문직 단체의 회원으로 발언할 때, 그들이 관여하는 어떠한 주장도 과학적 자료와 논증할 수 있는 전문적 경험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까지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논문은 에블린 후커가 1957년 동성애자들에게 몇 가지 “투사적” 심리검사를 한 결과 이성애자들과 다름이 없었다는 보고 정도였다(이 연구 대상자는 뉴욕의 미국 동성애자 클럽이 추천한 동성애자들이었다. 그녀의 임상연구는 이 한편 뿐이지만,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 동성애 연구로 유명한 정신분석가 에드문드 버걸러는 동성애자들은 적응장애를 가진 자기도취적 소수집단으로, 스스로 동성애를 미화하고 있으며, 그리고 고통을 자초하고자 하는 깊은 내면의 욕구를 가진 자들로, 법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하며, 1950년대 시작된 동성애 인권론은 동성애자를 오히려 억압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하였다.
후유증
동성애의 “정상화” 성공 이후, 소아성애(pedophilia)도 동성애처럼 성지남의 하나로 정신장애가 아니라는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장차 다른 성도착장애들(예를 들면 수간, 근친상간 등)도, 본인이 원하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유이며 정상이라는 주장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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