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일 의학박사(비뇨기과 전문의)
포스트 모던의 현대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주류 사상은 ‘하고 싶은 것은 해 보라! (do as you please!)는 것이 그 표어라고 볼 수 있으며 모든 금기와 타부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그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류문명의 발달과정을 잠시 고찰해 보면 인간은 씨족사회 부족사회 그리고 크고 작은 국가들이 생기고 다양한 권력투쟁과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며 중앙 집중 되었던 절대 권력은 이후 정보화 민주화와 전지구화의 과정을 겪으며 다시 각 개인들에게 작게 나뉘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사회와 국가의 유지 과정에서 많은 특권 기득권들이 생겼고 그러한 지나치거나 부당한 권리들 중의 일부들을 소수자들의 권익을 위해 제한하고 금지하는 것은 일견 올바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회의 항구적인 유지 발전을 위해서 최소한도의 질서 유지는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며 특히 신앙을 가진 분들은 이 세상에는 신이 제정한 규칙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라는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말씀을 근거로 민족이나 인종, 신분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는 신약에서나 구약성경에서 금지하여야 할 악한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는 방탕함에 가까운 성애의 자유나 쾌락만을 추구하고 창조섭리를 어기는 괴이한 성적 탐닉이나 동성애 추구를 조장하거나 관용하는 어리석음을 방관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결혼만이 인정되어야 하고 학교 성교육은 윤리적 일부일처제를 근본적인 결혼양식으로 존중하도록 가르쳐야지 동성애를 위시한 비정상적 성애의 형태를 이상적인 가족의 한 형태인 것처럼 소개해서는 곤란하다.
인간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다. 인간은 사익의 추구나 특정 단체나 국가적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악을 행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러하기에 우리가 행사하는 민주주의의 투표 행위는 진리를 선택한다기보다는 큰 악(greater evil)을 저지하기 위해 작은 악(lesser evil)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일찍이 라인홀드 니버는 말했었다. 소수의 자유와 기쁨을 위해 절대 다수를 슬픔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가지는 신성불가침의 권리는 모든 인권운동의 기본이 되지만 그 기원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타난 기독교적 천부인권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 뜻에 따라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죽을 육체와 죽지 않을 영을 가지고 그 영은 자신이 누구인지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생명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무엇보다 존엄한 것이기에 임신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생명권은 존중되고 보호될 수 있어야 한다.
인류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고 싶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 하에 근래 급격히 유행하고 있는 동성애, 퀴어등 특수 취향의 성애를 상위 우선순위에 두는 젠더 중심주의(gender mainstreaming)의 물결은 가족 중심주의(family mainstreaming)의 흐름으로 다시 원상 복구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성은 임신 출산 등과 관련된 생산적인 측면(procreational aspect)과 삶의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재생산적인 측면(recreational aspect)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근래 공동체를 지속 가능하게 해 주는 생산적인 방향보다는 지나치게 쾌락과 육욕의 만족만을 지향하는 즐거움 증대의 방향으로 치우쳐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흐름의 한 양상이 동성애와 퀴어에 대한 정상화 요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오류에 대한 올바른 비판을 국가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족쇄 채우려는 것은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올바른 진단을 막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가 전염병인지 선천성인지 폭력에 의한 손상인지 얼른 구별하여 잘 치료하여야 본인도 행복하고 사회는 안전하고 국가는 발전할 힘을 얻는다. 동성애는 에이즈를 위시한 수많은 성전파성 질환의 은거지가 될 수 있고 성적인 인격발달의 비정상적 발달의 한 형태이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정상적인 결혼보다 행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경험으로도 알 수 있고 여러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동성애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교육시스템을 집중 가동하여 철없는 소년 소녀들을 조기에 동성애자가 될 수도 있을지 학습을 시켜주려고 하는 것은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아이들에게 중용의 삶을 살지 말고 성소수자가 되라고 등을 밀어내는 것과도 같은 큰 정책적 오류가 될 수 있다. 훨씬 단명하고 행복하지 못한 동성애를 조장하지 못해서 고위 정책 당국자들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인류역사상 기상천외한 일이며 우리 선조들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물론 동성애자들도 우리의 이웃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여야 하고 원한다면 치료를 받을 수도 있도록 도와주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한 사회의 미풍양속을 크게 해치고 문화를 변혁시킬 수 있는, 미래국민들을 향한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섣부른 실험적 시행보다는 충분한 국민적 토의와 의견수렴 등을 거치도록 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쾌락 추구 젠더 중심주의에서 가족 중심주의로 돌아가자!
이세일(비뇨기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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