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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교수의 실패한 젠더 실험

작성자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작성일
2024-06-10 17:23
조회
5

머니 교수의 실패한 젠더 실험

민성길 교수




민성길 명예교수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젠더 개념은 1950년대 성학자 존 머니(John Money, 1921-2006) 교수가 처음 제시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간성(intersex)을 가진 어린이에 대한 성전환(확인) 수술이 널리 시작되고 있었는데, 머니 교수는 존스홉킨스의과대학 정신과에서 간성환자의 수술전 심리평가를 담당하고 있던 임상심리학자였다. 그는 당시 “생물학적” 성에 대비되는 “학습되는” 젠더정체성 개념을 제안하고 있었다.

브루스 리머(Bruce Reimer)라는 이름의 남자아이가 1965년에 태어났는데, 생후 8개월 때 불행히도 포경수술의 부작용 때문에 음경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이 생겼다. 부모가 성전문가 머니 교수에게 상담을 하였을 때, 그는 이참에 아예 성전환수술을 해 주자고 부모를 설득하였다. 그는 이 기회를 의학적 기술로 생물학적 성을 반대인 젠더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할 하나의 실험으로 생각하였다.

리머가 생후 22개월 되었을 때 브루스의 “정상적”인 음경과 고환이 제거되고 여자 성기 모양이 성형수술로 만들어 졌다. 어른들은 브루스에게 브렌다(Brenda)라는 이름을 주고 여자아이로 키웠다. 그 소년은 자신이 여자인 줄 알고 자랐다. 브렌다는 사춘기에 이르러 성호르몬을 투여받아 유방도 커졌다.

머니 교수는 성전환 수술 이후 10여년 간 브렌다와 그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인 브라이언이 성장하는 과정을 비교 관찰하였다. 그 두 어린이는 일란성 쌍둥이였기 때문에 유전자가 같았고, 같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자랐고, 같은 집안에서 양육되었으므로, 완벽한 비교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머니 교수는 정기적으로 두 쌍둥이를 검진하면서, 다수의 논문을 통해 “정상” 아동에서 성전환수술(transsexual operation)과 양육으로 젠더가 바뀔 수 있음(gender fluid)을 입증하는 것에 대해 성공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두 쌍둥이는 학계와 일반인들 사이에 “John/Joan case”로 알려졌다. 브렌다는 머니와 더불어 TV 등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이러한 성공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성기 장애가 있는 소아들에 대한 성전환수술이 널리 이루어졌다.

그러나 브렌다가 나중 고백하기를 그는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젠더불쾌증(젠더정체성장애 또는 트랜스젠더. 즉 자기 몸은 여자라고 하는데, 여자 같지 않다는 느낌)를 느끼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남성성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브렌다는 남자 같은 행동 방식을 보임으로 또레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자신의 성(젠더) 정체성에 대해 혼란에 빠졌다. 부모는 브렌다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 주었다.

15세가 된 어느 날 아버지가 머니 교수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괴로워하는 브렌다에게, 정신과의사의 조언에 따라, 과거 출생과 수술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브렌다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도로 “남자”로 살기로 하였다. 그는 이름을 다시 데이비드로 바꾸었고 여성 호르몬 투여를 중지하였다. 그는 남성호르몬을 투여받으면서, 유방을 제거하였고 음경 성형술을 받았다. 25세 그는 세 아이의 여성과 결혼하였다.

머니 교수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머니 교수는 자신의 실험적 연구가 실패하였음을 계속 비밀로 하였다.

32세 때 데이비드는, 다른 사람들이 유사한 시술을 받음으로 자신처럼 겪게 될 고통스러운 후유증을 차단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유명한 하와이대학의 성심리학자인 밀턴 다이아몬드(Milton Diamond) 교수에게 자신의 과거 비밀을 공개하였다. 그의 이야기는 1997년 Rolling Stone 잡지에 실림으로 전 세계에 폭로되었다. 머니 교수의 연구의 거짓됨은 국제적 스캔들이 되었다.

추가적인 폭로도 있었다. 데이비드는 어렸을 때, 머니 교수가 데이비드의 쌍둥이 형제인 브라이언과 서로 음부를 노출하고 서로 간에 성교하는 행동을 흉내 내도록 강요하였다고 말하였다. 심지어 그런 장면을 주변 연구원들이 관찰하게 하였고 사진까지 찍게 하였다고 폭로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머니 교수는 “건강한 성인 젠더정체성”의 발달을 위한 치료방법으로 “소아기 성적 연습 놀이”(childhood sexual rehearsal play)를 시켰다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그런 경험은 고문 내지 학대였다고 주장하였다. 현 시점에서 보면 이는 분명한 소아성학대이다. (그즈음 알프레드 킨제이와 빌헬름 라이히도 어린이에게 성적 능력이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성적 자극을 하는 학대를 하였다는 폭로가 있다.)

쌍둥이 형제 브라이언은 성인이 되었을 때 조현병(정신분열병)을 앓았다고 하는데, 결국 36세에 자살하였다. 데이비드도 우울증을 앓았고 부부불화가 겹쳐 38세에 자살하였다. 리머 형제의 부모는 리머 형제의 불행을 머니 교수의 성적 학대 때문이라 비난하였다.

이런 폭로와 비극 이전에 60년대부터 성 관련 학계에서 머니 교수는 성(sexe)과 구별되는 젠더(gender)라는 개념을 창안한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1997년 그의 성전환 실험의 실패가 폭로됨에 따라 그의 명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머니 교수는 이런 스캔들이 우파 매체 또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비난 때문이라 강변하였다.

크리스천의 시각에서 보면 머니 교수의 실패는 당연하다. 진실한 크리스천에게는 현재 이미 실패한 젠더 이념이 주류화되어 가고 있는 잘못된 문화적 및 정치적 과정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연세카리스가족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