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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의와 선교: 과학만능주의 시대의 선교전략

작성자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작성일
2022-09-13 14:56
조회
255
과학주의와 선교: 과학만능주의 시대의 선교전략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교실  교수  류현모

 

들어가는 글

우리는 현재 과학주의 혹은 과학/기술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며 과학적 발견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기술로 연결되면서 과학/기술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세계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생각의 씨앗은 학교교육 속에서 은연중에 뿌려진 것이다. 과학주의는 유물론, 물질주의, 자연주의 혹은 물리주의라고도 표현된다. 이것은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물질로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만 실존한다는 방법론적 자연주의로 연결되며, 또 자연주의적 방법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신, 영혼, 사후세계 등을 부정하는 철학적 자연주의로 연결된다. 결국 이들을 종합한 과학주의는 종교적 믿음이란 증명할 수 있는 사실(Fact)이 아니기 때문에 공적인 진리(Truth)로 제시될 수 없고, 따라서 믿음을 사적인 영역으로 쫓아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우리는 전도나 선교를 위해 과학주의 아래 교육받은 우리 자녀들이나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나님, 구세주 예수님,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을 포함한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적과 같은 일들을 사실(fact)로서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선교사님들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인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먼저 이들 속에 깊이 물들어 있는 과학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과학주의는 무엇이며, 그 과학주의의 허점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함으로써 그들 속에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할 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이해

모든 사람은 각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세계관이라고 한다. 세계관은 마치 선글라스의 렌즈 색깔처럼 특정 파장의 빛은 흡수해 버리고 나머지 파장만 통과 시킨다. 따라서 선글라스를 끼고 오랫동안 있으면 그 상태에 적응하여 통과된 빛의 색깔만 있는 세상에 사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세계관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적 세계관과,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대별된다. 유신론적 세계관에는 어떤 신을 전제하는 지에 따라 범신론, 다신론, 일신론으로 분류된다. 일신론은 유대-기독교-이슬람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힘입어 타력으로 구원을 얻는 기독교와 선행이나 율법준수 등, 자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유대교와 이슬람이 있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에서는 인간의 이성에 불이 들어왔다는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과학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때를 모더니즘 시대라고 하는데 다윈의 진화론과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과학적 발견이 산업혁명으로 꽃피워진 시기이다. 이 시기에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인본주의와 마르크스의 이념을 따르는 공산주의가 쌍둥이처럼 발전하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무신론적 과학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가운데, 모더니즘은 이성을 너무 강조하며, 전체주의적 특성 때문에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부작용을 드러낸다. 히틀러의 나치즘, 스탈린의 강제노동 수용소를 보고 겪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게 되었다.

개개인이 가지게 되는 세계관은 가정교육을 통해 바탕색을 칠하고, 그 위에 학교교육을 통해 강력한 덧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공교육은 무신론적 인본주의에 과학주의를 중시하면서 종교적인 색채를 없애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받은 아이들이라도 12년간의 공교육을 받으면 그 세계관의 선글라스 위에 강한 무신론적 얼룩이 지게 되며, 그 얼룩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거기에 덧붙여 대학교육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 위에 또 다른 종류의 얼룩들을 가지게 된다.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며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고 제자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의 전도 대상인 이 세상은 오늘날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가 과학주의라는 모더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이념에 의해 종교적 믿음을 비웃도록 교육받은 까닭이다. 영국인으로 40년 가까이 인도 선교사로 섬겼던 레슬리 뉴비긴은 우리 모두는 교차로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인은 성경의 창조-타락-구속-완성의 이야기를 믿고 전하면서, 또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야기를 믿고 행하면서 삶의 현장인 교차로에서 만난다. 이 교차로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함으로써 그들을 우리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전도이고, 선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인은 교차로에서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된다. 그 교차로에서 만날 과학주의에 물든 이웃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요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선교사적 삶을 위해서는 성경의 통전적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들이 가진 세계관에 대한 장단점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동시에 필요하다.

 

과학주의란

미국의 기독교 변증가이며 철학자인 J.P. 모어랜드는 과학주의를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만이 실재(reality)에 대해 유일하고 진정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신념”이라고 정의하였다. 생물학적 현상은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고, 화학적 현상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기에 모든 것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물리주의로도 연결된다.

캘리포니아 주 공립학교의 과학교육 과정 지침서로 출판된 <과학의 기본 틀>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는 생물학에서 종을 넘어서는 대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학생 중 일부는 자신의 종교나 철학적 신념으로 인해 과학적 결론을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교사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네가 이 과학적 진리의 증거를 개인적으로는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분야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지식이다. 즉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지식의 일부이기 때문에 너에게 이것을 가르치는 것은 나의 의무이다.”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과학교사들이 창조론보다 진화론이 설득력 있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지식은 오직 자연과학에서만 나오고, 자연과학에서 유래한 주장만이 공적으로 보증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나 철학의 주장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 주관적 선호의 문제이지 공적으로 주장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하버드대학의 유전학 교수인 리처드 르원틴의 발언은 좀 더 노골적이다.

상식에 반하는 과학적 주장(진화론)에도 우리가 과학(진화론)의 편을 드는 이유는 우리가 사전에 유물론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의 발이 문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에 유물론은 절대적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과거 로마 교황청이 종교재판에서 갈릴레오의 과학 활동을 종교의 이름으로 핍박한 일화에 대한 피해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피해의식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의 말에도 나타난다.

세계는 오랜 종교의 악몽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종교의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우리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해야 하고 이는 문명에 대한 최대의 기여일 수도 있다.

이상의 모든 생각들을 배경으로 과학 철학자인 톰 소렐은 과학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과학주의란 과학, 특히 자연과학이 인간의 학문 중에서 가장 소중한데 그것은 과학이 가장 권위 있고, 진지하고, 유익하기 때문이란 신념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여러 근원에서 나온 지식들의 주장이 서로 다툴 때는 항상 과학적인 것이 비과학적인 다른 학문의 주장을 이긴다는 뜻이다. 즉 과학이 진리와 합리성의 유일한 근원이라는 신념이 과학주의이다.

 

진화론

서양의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에서 무신론의 세계관으로 방향을 전환하는데 가장 큰 공로를 세운 것이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다윈이 주장한 가설이다. 대영제국을 위해 전 세계의 지질조사와 해역탐사의 임무를 맡은 비글호의 2차 세계일주(1831~1836) 항해에 다윈은 생물학 분야 조사원으로 승선하여 전 세계의 동식물들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이때 관찰했던 내용을 1859년 <종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같은 종의 개체 간 생존경쟁에서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종류만 살아남게 되어 시간이 많이 흐르면 원래와는 형태가 많이 달라진 새로운 종이 생길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것을 진화론이라 한다. 이러한 다윈의 가설에 영국의 무신론 과학자들이 동조하고, 마르크스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공명함으로써, 생명의 기원에 하나님의 필요성을 제거해 버린 무신론의 기반 이념이 진화론이다. 그들이 과학이라 주장하는 진화론은 전혀 과학적 증거가 없는 형이상학적 주장이다.

이렇게 제안된 진화론에 대해 영국의 무신론 과학자들과 소련의 공산주의 과학자들이 살을 붙이고 점점 더 크게 만들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대신에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대폭발을 통해 생성된 우주를 가정한다. 또 하나님이 종류대로 각각 창조하신 모든 종류의 생명체 대신 우연과 생존경쟁을 통한 점진적 진화에 의해 하등 생명체에서 고등 생명체로의 진화라는 기원론을 확립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그 진화론은 하나님의 개입 없이 모든 존재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무신론 이념의 기반이 되었고, 그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과학주의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진리를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이것은 과학주의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성경의 가장 앞부분인 창세기의 여러 장들을 믿을 수 없는 신화로 만들어 버린 진화론이라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윈이 주장한 이론은 무엇이며, 그 이론에 어떤 살이 붙고 눈덩이처럼 그것이 커졌는지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그 다음은 그 이념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최신 연구내용으로 비판할 것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내용

다윈이 쓴 책 <종의 기원>의 원래 이름은 상당히 길다.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red races in the struggle of life, 자연선택 혹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에 유리한 종류의 보존을 통한 새로운 종의 기원에 대하여>. 이 책에서 다윈은 당시에도 널리 행해져 오던 선택적 교배를 통해 털을 많이 생산하는 양, 우유를 많이 생산하는 소, 알곡이 많이 열리는 밀, 꽃이 더 예쁜 튤립 등 같은 종 안에서도 원하는 특성을 강화시키는 품종계량을 설명한다. 또한 자신이 세계 일주를 하면서 방문했던 곳의 특별한 기후와 환경으로 인해 자신이 영국에서 보아왔던 동식물이 형태적으로 많이 변화해 있는 것을 관찰한 내용을 기술한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다윈은 생명체들이 자연 환경이나 사육 혹은 재배의 인위적 환경 변화에 의해 형태가 점진적으로 변하며, 같은 종이라도 다른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격리되어 유지되다 보면 전혀 다른 형태의 다른 종으로 변할 것이라 추측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변화는 단기간에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은 수백만 년~수억 년 등 아주 긴 시간적 요소의 도입을 필요로 한다. 다윈은 어떤 종과 그 인접 종 사이의 점진적 형태변화를 보여주는 일련의 중간화석들이 없는 것이 자기 이론의 문제점임을 그 책에서 고백했고, 후대에 그런 것들이 발견되기를 기대했었다. 다윈의 주장한 진화론을 요약하면, 1) 진화는 점진적이다, 2) 진화는 방향성이 없고, 우연에 의해 발생한다, 3)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종류만 살아남는다, 4) 최초의 한 생명체로부터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진화했을 것이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윈의 이론에서 덧붙여진 내용

다윈의 <종의 기원>은 당시의 영국과 유럽의 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과학적 발견의 기술화로 일어난 산업혁명이 일으킨 놀라운 경제적 변화, 과학의 발견에 의한 질병의 원인규명과 예방, 치료법의 발달로 인한 인간수명의 획기적인 연장 등을 통해 과학자들은 자긍심을 한껏 높였고,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이 생겨난 것이다. 진화론은 과학계에 하나님의 자리를 과학자들이 차지할 수 있음을 제시했고, 그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후 과학계에서 지속되고 있다.

1) 영국 지질학회의 라이엘이라는 학자가 다윈의 진화론에 맞춰 지층의 나이를 수억 년의 단위로 격상시켰다. 이들이 지층의 연대를 설정할 때에는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도 없는 시대였다. 이들은 점진적 변화로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변화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것을 가정하고 근거도 없이 지층의 나이를 설정한 것이다.

2)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할 당시 영국에 있었던 마르크스는 진화론을 신의 간섭을 배제할 수 있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자신의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설명하던 경제체제의 정-반-합을 통한 변화를 생물학에서도 동일하게 보여주는 과학적 발견으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신은 존재할 필요도 없고,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면 안 된다.”라고 주장했던 무신론의 기원론에 기반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소련 공산당과 소련 과학원은 진화론의 기반이 되는 근거 없는 과학 이론들을 수없이 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소련 과학원의 오파린은 원시수프 이론을 주장하면서 생명이 생성될 유기물의 농도가 높은 시궁창 같은 웅덩이가 있었고 그로부터 생명이 저절로 탄생했을 것이라는 “화학진화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근거 없는 상상에 불과하다.

3) 시조새 사건: 중간화석이 없는 것이 자기 이론의 문제점이라는 다윈의 고백 때문에 그를 지지하던 대영박물관이 중간화석을 발견하면 비싸게 사겠다는 공고를 한다. 이 소문을 들은 독일의 장사꾼들이 그 지역에서 나온 화석을 조류와 파충류의 중간화석이라 주장하며 비싸게 팔아먹는다. 그러나 나중에 전문가들이 조사한 결론은 시조새 화석이 새의 화석이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화석이 아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간화석은 하나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두 종 사이의 형태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일련의 화석들이 존재해야만 한다. 아직까지 이런 중간화석은 하나도 발견된 적이 없다. 진화론자인 UC 버클리의 교수 클라크 호웰의 "인류 진화를 설명할 만한 증거(화석 혹은 유골)는 없다.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 이 분야는 아주 적은 증거를 가지고 설화적인 처리를 요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인류 진화에 대한 완성된 시나리오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 너머에 있다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라는 고백이 이것을 잘 설명해 준다.

4) 여러 종류의 동물 발생과정에 대한 그림을 남겼던 독일의 에른스트 헤켈은 “개체 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그 뜻은 한 개체의 발생과정을 살펴보면 그 속에 진화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헤켈이 그린 배아의 그림은 거짓이라는 것이 이후 많은 사진들에 의해 드러났다. 물론 헤켈 자신도 죽기 전에 자신이 진화론을 지지할 목적으로 그림을 변조, 날조했음을 나중에 고백했지만 진화론의 강력한 지지자들에 의해 묻혀버렸다.

5) 밀러-유리의 실험: 소련의 오파린이 세운 화학진화론을 입증하기 위해 무기물에서 생명체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아미노산이 합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을 하였다. 먼저, 이 실험의 환경이 원시 지구의 대기가 현재와 아주 다른 것을 가정했고, 생성된 아미노산이 생명체가 이용하는 L-형 이성질체가 아니라, 생명체에서 사용되지 않는 D-형 이성질체 밖에 만들지 못했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설령 이 물질이 사용될 수 있다 하더라도 생명의 탄생과는 전혀 무관한 결과일 뿐이다. 생명의 탄생을 위해서는 이런 유기물 단량체가 중합하여 다양한 유기물 다량체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들이 잘 조합되어 하나의 세포가 만들어져야 한다. 밀러의 실험은 천리 길의 한걸음에 해당할 뿐이며, 그것조차 비난의 소지가 많은 실험결과일 뿐이다.

5) 이러한 사실 외에도 다윈의 핀치, 후추나방의 환경적응, 날개 4개 달린 돌연변이 초파리, 등 수없이 많은 현상들이 진화론을 지지하기 위해 제안되었으나, 모두 억지로 끼워 맞춘 내용들뿐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신의 연구결과들은 진화론을 부정한다

1) 진화론은 첫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J Craig Venter는 민간자본의 투자를 받아 미국과 영국의 국가연구비로 진행되던 인간게놈프로젝트 협의체와 경쟁하였지만 미국 정부의 중재로 마지막에는 이들과 힘을 합쳐 인간 유전체의 전체 서열을 모두 밝혀내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J Craig Venter Institute (JCVI)라는 사립연구소를 설립하고 야심차게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즉 새로운 생명체를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간단한 생명체라고 알려진 Mycoplasma genitalium이라는 세균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모두 밝혔는데 유전자의 개수가 525개였다. 그 연구팀은 최초의 생명체가 어느 정도로 간단했을 지를 파악하기 위해 525개의 유전자 각각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과정을 통해 밝혀진 것은 생명체로서 생명현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480개의 유전자와 그 유전자로 만들어낸 단백질이 한꺼번에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점진적인 하나의 유전자, 하나의 단백질로서 생명의 시작을 노려볼 수 없다는 것이다.

2) 분자생물학의 중심명제(Central Dogma of Molecular Biology)는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가 이중나선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이 1970년 발표한 이론이다. 핵 속의 DNA 염기서열은 생명현상의 정보를 가졌으며, 이 전체 정보 중 하나의 단백질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그 염기서열 정보만 mRNA로 전사하고 세포질에서 단백질로 번역함으로써 그 단백질이 생명현상을 나타낸다. 또 세포가 분열하기 위해서는 이중나선의 DNA가 각각을 틀로 해서 똑 같은 이중나선 두 세트로 복제한 후 각각을 두 세포가 나누어 가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복제, 전사 및 번역의 과정을 위해서는 각 반응을 촉매하는 단백질인 효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효소의 정보는 DNA 염기서열로 저장되어 있지만 그 정보와 함께 효소인 단백질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으면 생명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정보와 그 정보의 산물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진화론이 주장하는 점진적 진화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3) 2005년 최고 과학저널 중의 하나인 Nature에서 침팬지의 유전자가 사람의 유전자와 98% 상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후 연구에서 침팬지 유전체의 전체 길이가 사람의 것보다 약 20% 더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크기만 해도 20%나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98% 상동성이 있다고 발표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후 이어진 연구에서 침팬지와 사람은 70% 이하의 상동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사람은 각 체세포마다 46개의 염색체를 가지지만 침팬지는 48개의 염색체를 가진다.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염색체 숫자가 다르고 각 염색체 상의 유전자 배열이 다른 동물 사이에서는 교배를 통해 새끼를 낳을 수 없다. 침팬지의 염색체 유전자 배열을 사람의 염색체 유전자 배열로 바꾸는 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부여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 중간의 동물이 있을 수도 없다. 따라서 아무리 외형이 비슷한 인접 종이라 해도 진화를 통해 새로운 종이 생기는 일은 불가능하다. 즉 같은 종 안에서의 소진화는 가능하지만, 종의 장벽을 넘어서는 대진화는 불가능하다.

4) 그 외에 이전에 진화의 아이콘으로 알려졌던 진화론자 주장들의 대부분은 증거가 없거나 불충분한 증거에 상상을 더한 것일 뿐이다.

 

유신 진화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지나면서 진화론, 무신론, 상대주의를 교육받은 사람들이 교사, 과학자, 심지어 신학자와 목회자가 되었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하나님에 의한 천지와 생명의 창조를 믿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부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유신진화론이라는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하나님이 우주와 생명체의 탄생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신 후, 다음의 과정은 진화에 맡겼다는 것이다.

유신 진화론 주장을 대표하는 사람이 프랜시스 콜린스인데 그는 의사이고 분자유전학자로서 몇몇 유전 질환의 원인 유전자를 정확히 밝혀낸 바 있다. 그 공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 책임자 겸 인간 게놈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어 인간 유전체의 첫 편집본을 발표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뒤늦게 회심한 기독교인으로서 인간 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과정을 간증한 책 《신의 언어》를 출판하였다.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바이오로고스 재단을 2009년 설립해 기독교와 과학 사이에 대화의 장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의 과학자로서의 영향력과 노력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 과학자와 신학자가 이 중간 지대를 하나의 해결책으로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유신 진화론을 크게 우려하는 견해가 있다. 성경학자 웨인 그루뎀은 바이오로고스 재단이 주장하는 유신 진화론도 결국 진화론이며 그들은 창세기 앞부분의 창조주 하나님의 역할을 크게 수정하였다고 비판했다 기독교 변증가인 오스 기니스는 교회가 유신 진화론을 수용함으로써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선한 의도로 어떤 견해나 행동 양식을 수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기독교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복음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경우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변증가이며 철학자인 J. P. 모어랜드는 유신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진화 과정 중의 첫 사람 아담을 특정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원죄의 책임 소재나 존재 여부도 불분명하게 만들어 버린다. 원죄의 교리가 희미해지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복음 역시 그 필요성을 상실한다. 또한 유신 진화론을 취하는 순간, 과학주의가 우위를 차지하면서 신학과 성경의 가르침은 과학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 또 과학의 검열에 의해 성경의 첫 부분에 대한 해석을 포기해 본 이 경험은, 이후 과학으로부터 압력이 올 때마다 그 해석을 쉽게 수정하게끔 만들 수 있다. 쉽게 수정될 수 있는 성경의 해석을 누가 굳게 믿을 수 있겠는가?

유신 진화론은 복음을 무너뜨리는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과학주의 비판

공격적 무신론 비판

리처드 도킨스, 다니엘 데넷,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사람들을 공격적 무신론자라고 말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과학주의/과학제일주의/과학만능주의의 내용이다. 평생을 무신론자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살다가 80세가 넘어 유신론으로 전향한 앤터니 플루는 <존재하는 신>이라는 책에 자신이 유신론으로 전향한 것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공격적 무신론자들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논증을 하지도 않으면서, 신 존재를 증명하는 현상들은 무시한다. 과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과학적 주장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철학적인 것인데 그 철학적 논증은 초등학생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피터 메더워는 《젊은 과학도들에게 드리는 조언》이라는 글에서 “꼭 필요한 일도 아닌데 마치 과학이 모든 가치 있는 질문의 대답을 다 알고 있는 듯 행하는 것, 설령 모르더라도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 또 과학적인 대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에 대해서는 얼간이나 숙맥들이 주고받는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이라고 치부하는 것, 이런 것들보다 더 빠르게 과학을 망신시키는 일은 없다.”라고 했다. 이 조언 역시 과학주의를 경계하라는 조언인 것이다.

물리학자 이안 허친슨(I. Hutchinson) 역시 과학주의자들의 행태는 "다른 학문들을 촉진하기는커녕 위험에 처하게 하고, 최후에는 그들의 오만함과 지적 따돌림의 대가로서 다른 학문 공동체들로부터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반응만이 되돌아오게 될 것" 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영국의 인도선교사였던 레슬리 뉴비긴은 주장한다. “현대 과학은 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의 손에 맡겼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인 기술개발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지혜를 대신할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 지혜는 과학기술의 목적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분별하는 힘이 있다.”

4차 산업혁명

과학제일주의는 앞으로의 세계가 4차 산업혁명에 의해 크게 변화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기술, 바이오 기술, 물리적 기술이 중심이 되어 각각의 기술이 발달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융합되면서 전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을 예견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대표적인 것이 플랫폼 기술인데, 아마존, 페이스북, 유튜브, 넷플릭스, 카톡 등 많은 사람이 접속하는 플랫폼을 통해 유통, 문화, 정보를 지배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바이오 기술은 질병치료, 건강한 노후, 기능이 증진된 삶, 먹거리, 환경 등 생명과학이 제공할 장밋빛 미래를 선전하고 있다. 물리적 기술은 드론, 우주비행, 무인자동차, 인공지능, 신소재 등을 통해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흔히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과학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방향을 과학/기술자들에게만 맡기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다이너마이트, 원자력, 미생물의 배양 등의 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을 무기로 사용할 것인지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견해가 필요하다. 특히 신학, 철학, 윤리학 등 삶의 기준에 관심을 가지는 전문가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메타버스

지난 2년에 걸친 COVID-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은 세상을 많은 측면에서 변화시켰다. 학교에서 비대면 수업의 확대, 직장의 재택근무 확대, 회사들의 사무실 해체, 플랫폼을 통한 배달 문화의 확산 등 4차 산업혁명의 방향성이 강화되고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가 있다. 이것은 Universe(우리가 살고 있는 유일한 세상-우주)에서 Uni(유일한) 대신 Meta(~를 넘어서)라는 접두어가 붙어 현실을 넘어선 세계 즉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디지털 게임에서 시작된 것인데 COVID-19를 계기로 더욱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 것이다.

교회에서도 COVID-19 때문에 시작한 비대면 예배를 통해 메타버스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즉 메타버스는 다가올 미래가 아니고 이미 우리에게 현실화되고 있는 중이다. 발 빠른 교회들은 메타버스가 다음 시대를 위해 준비해야 할 중요한 기술이라고 주장하며 이 기술을 먼저 도입하여 디지털 시대의 영적전사들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상공간의 교회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 1) 가상공간의 교회는 하나님과의 접촉을 방해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의 특별계시와 함께 자연에 새겨진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가상의 교회는 이런 계시와 접촉의 기회를 제한한다. 2) 메타버스 공간 창조자인 인간의 생각과 디자인을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창조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3) 현실세계의 교회에 대한 요구는 점점 줄어들 것이며 그로부터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다. 4) 가상교회를 매력적으로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에 연결이 가능한 교회와 불가능한 교회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5) 성도의 교통이 없는 교회가 될 것이다. 성도가 직접 만나거나 서로의 내적인 고민을 나눌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확실히 강력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문명이 낙후된 선교지에서는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말씀 전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도 창세기 1:28을 통해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명을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을 인간에게 주셨다. 기독교인들은 이 명령을 잘 수행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공부하고 익힌다. 그러나 그 과학기술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을 창조사역에 동참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거나 새로운 우상이 되어버린다면 오히려 선교를 방해하는 부메랑이 되어 뒤통수를 칠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 바로 세우기

진화론, 무신론, 상대주의, 젠더이념의 교육으로 기독교 내부에도 많은 변질과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이념에 의해 오염된 교육과정 속에서 편향된 교사들에게 교육받은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 교회의 목회자, 신학자, 교사, 신학교도 이러한 이념들에 물든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오염된 자신의 세계관이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느헤미야가 동생 하나니에게 전해들은 예루살렘성의 소식이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세계관 상태와 많이 닮아있음을 본다. <느 1:2~3>.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한 후 성전이 재건되고, 에스라의 말씀 선포로 신앙은 회복되었으나, 허물어진 성벽과 불타버린 성문은 유대인들의 성전과 신앙과 삶을 방어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의 신앙을 변호하는 성벽이며 세상의 오염된 지식의 출입을 제어하는 성문이다. 선교 준비는 명확한 복음과 함께 선교사 자신의 기독교 세계관 정립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다음 선교 대상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관은 세상 전반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즉 모든 학문분야의 관점들을 망라한다. 세상의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개인이 그 모든 지식에 대하여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선교 혹은 전도의 현장에서 우리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질문들에 대해서는 자기의 전공이 아니라 해도 최소한의 분명한 답변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과학주의나 진화론과 연관되는 공격을 받으면 뒤로 물러서기 쉬운 것처럼 우리는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한 불신자들의 공격에 대해서는 제대로 방어할 수 없다. 우리는 다양한 학문으로부터의 반 기독교적 공격에 대해 확립된 답변들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세계관 속에 오염되어 있을지도 모를 다른 세계관의 요소들을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세계관 전쟁은 영적전쟁이다. <고후 10:4~5>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우리 속에 오염된 선입견이나 편견은 세워질 때는 너무나 쉽게 세워지지만 그것을 허물 때는 마치 견고한 진처럼 저항하는 것이다. 내 속에 오염된 다른 세계관들을 무너뜨리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세계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세계관 정립은 평생의 노력이 필요한 성화의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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