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성경의 렌즈로 세상을 보십시오!

작성자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작성일
2022-08-30 13:53
조회
450
목회와 신학  2022년 9월호 스페셜 인터뷰

성경의 렌즈로 세상을 보십시오!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류현모 교수

글 이민구 기자· 사진 정화영 기자

발문

교회에 은밀하게 침투한 세속 세계관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이 기독교인다운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교회 속에서는 성경을 따르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지만, 세상에 나가면 성경이 아니라 세상의 법을 따르는 존재가 됩니다. 교회에서의 삶과 세상에서의 삶의 기준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9월호 스페셜 인터뷰에서 소개할 인물은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류현모 교수다. 분자유전학을 연구하면서 가르치는 그는 50대 초반 기독교 세계관의 중요성을 깨달은 후,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주님의 사명으로 알고 헌신하는 교수다. 그는 온누리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와 학교, CGNTV 〈퐁당〉, 두란노바이블칼리지 등에서 기독교세계관 강의를 하고 있으며, 미국 고등학교에서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위한 교과서로 쓰이는 데이비드 A. 노에벨의 《충돌하는 세계관》을 딸과 함께 번역했고, 아내와 함께 기독교 세계관 교재인 《기독교 세계관 바로 세우기》를 저술했다.

류현모 교수는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메사추세츠대학교, 일본 오사카대학교, 핀란드 헬싱키대학교에서 교환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교실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서울대학교에서 류 교수를 만났다.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서울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온누리교회에 등록하고, 교회 프로그램대로 일대일제자양육, 순모임, 아버지학교 등을 하면서 복음에 대해 알게 되고, 가정과 교회에서의 삶이 변화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그 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앙과 괴리가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분법적으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세상에서는 세상의 법을 따랐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기준에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데이비드 A. 노에벨의 《충돌하는 세계관》을 접하게 되었고, 기독교 세계관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세계관은 기준의 문제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 세계관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그 기준이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책 전체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성경이 삶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세상에는 다른 많은 세계관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뒷문으로 들어와 기독교 세계관을 오염시키는 세상의 세계관입니다. 문제는 은밀하게 침투한 세계관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이 기독교인다운 삶을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속에서는 성경을 따르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지만, 세상에 나가면 성경이 아니라 세상의 법을 따르는 존재가 됩니다. 교회에서의 삶과 세상에서의 삶이 일치되지 않게 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것을 분별하여 일관성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로 하여금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성경을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교회 속에서만 그리스도인으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삶으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나라의 구성 요소를 국민, 영토, 주권이라고 할 때, 이를 하나님 나라에 적용시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국민)은 교회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전 영역(영토)에서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주권)을 따라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자신을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 말씀에 순복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삶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기독교 세계관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도가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따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의 일상을 변화시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을 너무 이론적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고,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충돌할 때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기독교 세계관 속에 침투한 은밀한 세속 세계관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내 세계관이라는 선글라스에 에 얼룩진 세속 세계관으로 인해 왜곡된 시선을 가지게 하고, 모순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얼룩을 닦아내야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라는 성경이야기를 기준삼아 사는 우리들은 과학주의, 상대주의, 해체주의로 특징되는 다른 세계관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삶의 현장이라는 교차로에서 마주칩니다. 이 교차로는 우리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삶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길로 가자고 설득할 것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세속적인 길로 갈 것인지를 다투는 영적 전쟁의 현장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나를 알고 적을 알면 절대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처럼 이 세대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

 

오늘날 교회에 은밀하게 침투하여 성도들을 위협하는 세계관은 무엇일까요?

기독교 세계관을 바로 세우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인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만 있다면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 속에서는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수많은 공격들이 있습니다. ‘Post-Christia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사회의 지배적인 시민종교가 아니게 되어 기독교적이지 않은 가치, 문화, 세계관을 가지는 상황을 말합니다. Gene Edward Veith는 우리 안에서 순수한 기독교적 요소를 전부 배제했을 때 아직 남아있는 요소들을 봐야하는데 그것이 교회 속에 은밀하게 침투한 세속 세계관의 요소이며, 복음을 뒤흔드는 다른 복음의 정체입니다. 그것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과학주의입니다. “과학이 모든 지식의 근원이다”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과학주의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적 사실(fact)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여 신앙은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하니 객관적 사실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믿음을 공적 영역에서 몰아냅니다. 믿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자유지만,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수 없는 사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한 신화적인 내용이라 공격합니다. 이것은 창세기의 앞부분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결국 성경이 지식의 원천이 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과학주의를 주도하는 중심이념이 진화론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은 생물학자가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세계를 제패한 영국이 식민지를 이해하기 위해 보낸 박물학자였습니다. 박물학은 실험적인 연구 방법이 아닌 관측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5년 간 세계 일주를 하며 관찰한 것을 정리한 가설이 진화론인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이런 가설과 추정을 포장하여 자신들의 설명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했고 과학주의를 주장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제는 진화론이라는 가설이 신성한 수준이 되어 학교에서 가르쳐 지게 되었고, 기독교인 자녀들의 신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 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상대주의입니다. 이는 절대 진리가 없다고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뉴에이지 같은 범신론을 기반으로 합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고 주장합니다. 절대 선,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 합니다. 이는 진선미의 기준을 파괴합니다.

기독교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하나님이 선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 하나님과 함께함이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 8:1) 이처럼 진선미의 기준은 하나님이시며, 성경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비추어 자신을 판단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상대주의는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바로 진선미와 정의에 대한 절대적인 성경적 기준을 무시하고 세상 기준을 제시함으로 삶 속에서의 우리 신앙을 위협합니다.

셋째는 해체주의입니다. 해체주의는 철학과 신학을 먼저 해체했습니다. 자크 데리다는 기독교 신학의 절대성을 깨뜨리려고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예술작품을 해체했습니다. 롤랑 바르트가 《작가의 죽음》에서 예술작품은 작가의 의도보다 독자의 해석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법도 해체되었습니다. 국회의 입법 의도와는 상관없이 판사의 해석에 의해 판결에 더 영향을 주었습니다. ‘로 대 웨이드’ 재판에서 낙태를 합헌으로 판결한 것이 대표적인 법의 해체주의적 해석이었습니다. 성도 해체되었습니다. 염색체 상 XY, XX로 분명하게 구분 되는 성을 생물학에까지 젠더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개인의 성 정체성을 결정할 권리가 그 자신에게 있다는 젠더 이념이 생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성을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성소수자가 기독교를 공격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유전이다”라는 주장이 옳지 않음을 드러내는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다》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1993년 〈사이언스〉라는 저널에 “게이 유전자가 있다”는 논문이 개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발표한 사람이 동성애자이며 미국국립보건원의 연구원이었던 ‘딘 헤머’였습니다. 이후 게이 유전자가 있다는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이 나왔고 양측의 공방이 한창 오고 가는 과정에서 2003년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연방대법원 판결, 2015년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 결정의 근거는 유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첫 논문이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사이언스〉에 영국과 미국 40만 명을 대상으로 유전체 검사와 성적 지향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논문이 개제되었습니다. 과거 “게이 유전자가 있다”는 주장을 했던 논문들이 동성애자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것 이었다면 그와는 차원이 다른 많은 샘플 수와 전장유전체 분석이라는 최신의 방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동성애가 유전인가에 대한 연구의 결정판입니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동성애라는 것을 유전적으로 절대 설명할 수 없다. 동성애 성적행동의 특성은 너무 많은 표현형을 포함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견된 관련 유전적 요소들을 모두 포함시켜도 동성애 성적 행동의 8-25%밖에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동성애가 유전된다고 할 수 없다.”

이를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제2형 당뇨병은 유전적 소인이 이보다 훨씬 큽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당뇨병에 걸린다고 하지 않습니다. 유전적 소인이 있을지라도 식습관이나 운동으로 이것을 조절하고, 예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는 자기 스스로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성애는 충동적인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 빠지기 쉽고,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마약, 술, 담배, 도박과 같은 성 중독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성동성애자들은 불특정 다수와 성관계를 많이 가지기 때문에 에이즈를 비롯한 수많은 성병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오래 머물러 있으면 반드시 성병에 걸리게 되는 러시안룰렛 게임에 비유합니다. 유전적 소인과 중독적 소인이 있다면 그들에게 위험성을 알리고 예방과 치료를 권하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아닐까요? 설탕이 위험한 당뇨환자에게 유전적으로 당이 끌리는 것이라 어쩔 수 없으니 마음껏 설탕을 먹게 허용하자고 하는 것이 그들을 진정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일까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타락한 세상에서 문화적으로 차별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 11조에도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으로 차별할 수 없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문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포함시킨 부분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대로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고 자신의 선택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행동을 권장하도록 하는 법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을 부인하고 성전환을 하는 것은 건강을 심히 해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생육, 번성, 충만의 문화명령에 반하기 때문에 입법이 되는 것을 반대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들을 위하는 법도 아니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할 때, 목회자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도들이 세상에서 과학주의, 상대주의, 해체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성도들이 성경 말씀을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이러한 세속 세계관을 분별하고, 성경적 세계관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할 때마다 비유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은 고레스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스룹바벨 성전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재건하고 50년 지나도록 성벽은 무너져 있었습니다. 언제라도 이스라엘 대적이 들어와 성전을 부수고 사람들을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읍을 회복시킵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바로 이 성벽과 같습니다. 성전이라는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성벽입니다. 세속 세계관이 공격하는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성벽과 성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의 성화를 이루는 평생의 과정에서 영적 전쟁의 방어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속 세계관의 영향이 성도들의 삶 속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절대적 기준을 따르는 신앙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핵심은 기준입니다. 진리의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진리는 진실(true) 혹은 거짓(false)이라고 할 때, 진리가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면 바뀌는 명제적 진리가 아닙니다. 변할 수 있는 세상의 지식이 아닙니다. 천동설처럼 진리로 알았던 과학적 지식도 장비를 개발하고 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면 진리가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워야 하는 진리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입니다. 그 절대적이며 성경적 진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 바로 세우기》를 저술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데이비드 A. 노에벨의 《충돌하는 세계관》을 영문학을 전공한 딸과 함께 번역한 후, 세계관의 중요성에 대해서 느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세계관의 이해’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세계관 중심의 내용으로 인해 반발도 있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계속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곳 저곳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회복의 교회 설립 16주년 기념으로 매달 한 번씩 1년 반 정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기독일보와 온누리교회 신문에 1년간 칼럼을 쓰게 되었고, 이를 모아 《기독교 세계관 바로 세우기》를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느헤미야처럼 52일 만에 성벽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집에서 부모가 하루에 한 장씩 같이 읽으면서 자녀에게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치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녀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세속 세계관으로 인해 무신론자가 되거나, 신앙을 버리지 않도록 예방 접종하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바로 세우기 위한 필독서를 추천해 주십시오.

《충돌하는 세계관》은 사전처럼 가지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미국 고등학교에서 3년 교육 과정으로 사용되는 세계관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기반으로 좀 더 쉽고, 내용도 쉽게 줄이고, 교재로도 쓸 수 있도록 만든 《기독교 세계관 바로 세우기》는 매일 매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과 이와 연결된 세상 사람들의 주장이 담겨있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 분야의 고전으로 20여 만 부가 판매된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 사상》, 세계관에 관한 논의를 통합하여 알기 쉽게 풀어낸 마이클 고힌, 크레이그 바르톨로뮤의 《세계관은 이야기다》도 좋습니다. 이슬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나빌 쿠레쉬의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 기독교 교육과 관련해서는 알버트 E.그린의 《기독교 세계관으로 가르치기》도 좋습니다. 진화론을 비판하는 존 레녹스의 《빅뱅인가 창조인가》,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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