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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정신분석

작성자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작성일
2021-02-02 13:19
조회
258
기독교와 정신분석*

민성길_ 연세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명예교수
  1. 서론
    기독교와 정신분석(psychoanalysis)은 모두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전통기독교와는 다른 세계관과 인간관에 기초한다. 정신분석은 인간행동에 영항을 미치는 강력한 무의식과 감정의 힘을 발견함으로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하였고, 인간 이성의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된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 –1939)의 정신분석이 처음 세상에 등장하였을 때 기독교는 이에 대해 반기독교적이라고 의심하며 적대적이기까지 하였다. 프로이트가 무신론자였을 뿐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소아의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투사한 이미지”라고 했다는 점, 그리고

순진한 어린 아이들에게 성욕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는 그를 악마적이라 비난하였다.

그러나 프로이트 당시 정신분석을 따르는 기독교 목사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루터교 목사였던 오스카 피스터(Oskar Pfister,1873~1956)는 정신분석을 기독교와 통합하려 했던 일반인 정신분석가였다. 그는 스위스 루터교 목사로서 일반인 정신분석가이다. 그는 취리히 대학과 바젤 대학에서 신학,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고, 목사가 되어 취리히 근교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1909년부터 프로이트가 사망한 1939년에 이르기까지 프로이트와 교류하며 정신분석을 공부하였다. 그는 1919년 스위스 정신분석학회를 창설하였다. 그는 프로이트를 옹호하며 정신분석 이론(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공포, 유아성욕론 등)을 신학과 교육학에 적용하였다.

2.정신분석이란

정신분석은 애초 노이로제(히스테리)를 위한 치료법으로 개발되었으며, 이제 역동정신치료로 진화하여 널리 정신장애 치료에 응용된다. 이제 정신분석은 인간행동에 대한 이론인 동시에, 연구방법이기도 하다.

정신분석 이론은 인간 마음에 대한 하나의 가설로서 기본적으로,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하고(마음의 구조적 이론), 자아, 초자아,이드로 설명하고(마음의 지형적 이론), 인격은 어린 아이로부터 어른으로 성숙 발달하고(정신성발달이론), 현재 행동의 기원이 과거에 있다고 보고(정신결정론), 과거와 무의식(이드와 과거) 및 사회의 자극으로부터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 자신을 방어하고자 (마음의 경제적 이론) 한다고 본다. 정신분석의 가장 유명한 공헌은 무의식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무의식에는 의식적 마음이 용납할 수 없는, 성욕(리비도)과 공격적 충동과 감정 및 기억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인간 행동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우리는 무의식을 기본적으로 알 수 없으나, 그 파생물,즉 꿈, 실수로 하는 언동, 그리고 정신과적 증상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이론은 정신결정론(psychic determinism)이다. 이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이후 성인의 건강한 또는 병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나이별로 구분하여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재기, 사춘기로 나누고, 각 단계에서 쾌락을 경험하는 방식과 그것이 성인의 행동이나 정신장애(노이로제)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이론화하였다.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에서의 쾌락추구를 소아성욕론이라 한다.

정통정신분석은 주로 성욕(리비도)과 공격성(타나토스)의 본능이론,정신성 발달(psychosexual development), 갈등과 불안이론 등을 강조한다. 또한 무의식의 충동은 방어기제를 통해 조정되어 사회적 적응행동으로 표현된다는 것, 인격의 발달 수준에 따라 선택되는 방어기제의 성숙도가 다르다는 것, 스트레스 상황에서 미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수준(소아수준)으로 퇴행하게 되면, 정신장애가 나타난다는 것 등을 말한다. 치료에서도 철저한 자유연상과 꿈 분석을 강조한다. 따라서 무의식과 과거를 깨닫게 함(통찰)으로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노이로제에서 해방된다고 본다. 그 과거란 주로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와 그에 관련된 부정적 감정으로 무의식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 무의식과 과거의 진실을 알게 하는 기법은 “대화”이다. 즉 대화로 하는 치료(talk therapy)이다. 구체적 방법은 자유연상(free association), 꿈의 해석, 전이와 저항의 해석이다.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이란 환자가 편안한 가운데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억제하지 않고 모두 진술하는 것이다. 꿈의 해석도 기억하는 꿈 내용에 대해 자유연상에 기초하며, 꿈에 나타난 상징들을 해석한다. 또한 치료적 대화 중에 발생하는 전이(transference-환자가 분석가를 과거의 중요한 인물처럼 생각하게 됨으로 무의식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방해된다)와 저항(resistance-무의식을 밝히는 것에 저항하는 것으로,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거나 침묵하거나 치료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 등)을 해석(interpretation)하는 것이다. 이로서 환자는 자신의 무의식을 통찰(insight)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성으로 내면(무의식)의 진실을 통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정통 정신분석과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으며, 힘든 과정이어서, 끝내 분석이 성공하려면 피분석자가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한다.

프로이트 이후 여러 제자들에 의해 여러 형태의 정신분석이 분화,발전하였다. 학파에 따라 강조점은 조금씩 다르다. 그 중에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와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중요한 선구자 중에 속한다. 아들러는 성(sex)이 아니라 열등의식이 인간행동과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핵심요소라는 것과, 열등감 또는 무력감과 이를 보상 또는 극복하려는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 등의 이론을 제시하면서, 프로이트와 결별하였다. 그는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을 창설하였다. 매우 실제적이어서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융 분석은 성욕으로서의 리비도 개념을 삶의 에너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하였다. 무의식도 개인 무의식과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으로 구분하였다. 융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와 달리, 무의식에 이미 자기(the Self)라는 원형(archetype)이 있어 이를 발견하는 것을 치료목표로 삼았다. 즉 무의식을 발견하여 이를 의식과 통합하여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을 소위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이라 하였다. 융은 이 과정을 모든 종교적 구원의 과정과 공통적이라 하였다. 그러나 융정신분석이 기독교적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도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정신분석의 분파들이 있다. 성욕보다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강조하는 분파도 있고, 대인관계에 초점을 두는 분파도 있고, 무의식보다 자아를 강조하는 분파도 있고, 인간실존을 강조하는 분파도 있다.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소아정신분석도 있는데, 대화보다 주로 놀이(play)의 기법을 사용한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정신성발달단계에 기초하여 사회적 발달과 정체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에릭슨은 이러한 기본적 모자 관계가 만족스러우면 이후 모든 인간관계에서 기본적 신뢰(basic trust)라는 덕목을 획득하는데, 만족스럽지 못하면 성장한 후 모든 인간 관계에서 기본적 불신(basic mistrust)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기본적 불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인간 개인에 대한 사랑으로 대신 죽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알렉산더(F. Alexander)는 통찰을 통한 변화보다 치료자-환자의 관계를 통해 교정적인 감정을 경험(corrective emotional experience)함으로써 감정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어릴 때 환자의 부모가 너무 엄하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면, 치료자가

그와 반대로 따뜻하며 융통성 있는 비권위적 태도 그리고 때에 따라 단호하고 한계를 짓는 태도를 보인다면 환자는 이러한 새로운 부모상에 적응하고 치료자를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이를 치료적 닮기(therapeutic modeling)라고도 한다.

이 모든 학파들은 모두 이후 정신의학뿐 아니라 정신치료, 상담,교육 나아가 사회학, 종교 등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1) 역동이론

정신분석 이론에 근거한 현대 정신의학을 역동정신의학(dynamic psychiatry)이라 한다. 쉽게 말하면 심리학적 정신의학인데, 뇌과학에 근거한 생물학적 정신의학(신경정신의학)에 대비된다. 역동정신의학에서 의 정신치료(psychotherapy)는 정통 정신분석과 기타 발전한 정신분석

의 분파들의 이론을 포괄적으로 종합하여 환자에게 가능한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통찰을 얻게 하려 한다. 통찰 능력이 부족하거나 통찰이 오히려 위협이 되는 사람에게는 지지적 정신치료(supportive psychotherapy)를 통해 환자를 분석해 주기보다 지지해주고 기존의 방어기제 중 건강한 부분을 강화해 준다(지지적이라 하더라도 치료는 정신분석적 이해에 근거한다).

(2) 가장 최근의 발달은 정신화 기법이다.

정신화(精神化 mentalizing)는 포나기(Peter Fonagy, 1952~ )가 말하는 기법으로, 암묵적으로 또는 표현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지각하고 해석하여, 내적 정신강태(욕구, 동기, 느낌, 신념 등)와 연결, 통합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능력을 말한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공감, 사회적 지능, 감정지능, 등이 있다. 이는 정통 정신분석과 정신분석가 John Bowlby의 애착이론, 그리고 인지이론도 다소 포함한 이론으로 어떤 종류의 정신치료를 하든 간에 정신병리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유용한 이론이다(반면 “마음챙김”으로 번역되고 있는 mindfulness라는 개념은 자타의 “현재”의 정신 상태에 주의를 준다는 의미이다. 정신화는 자서전적 이야기 (narrative)에 기반 한다는 점에서 마음챙김과 다르다). 정신화 능력은 아기엄마간의 애착(attachment)에서 발달한다.

3. 성경과 정신분석 이론

예술, 종교, 일상 행동 등이 정신분석과 만나는 상황은 매우 흥미를 끄는 일이다. 정신분석이 가려져 있는 “이면”에 있는 뜻밖의 양상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정신분석 이론은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방법”이므로, 신의 개념과 종교적 인간관 그리고 신앙의 의미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신분석은 신학에서 다루는 인간의 근본 문제, 의미, 삶의 목적 등에서 관심의 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정신분석 이론과 기법은 목회상담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특히 융 정신분석은 기독교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여러 종교들과 대화의 폭이 넓다. 그러나 융 정신분석이론은 엄밀히 말하면 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심리적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기독교에 관련하여서는 정통 정신분석 이론은 기독교의 교훈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 성적 본능과 공격성과 쾌락, 투사, 대치, 억압, 등등 인간 마음의 정신역동(psychodynamic)의 이론이 여기저기에 암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신분석과 기독교가 대화한다면, 그런 점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필자가 신학자가 아니어서, 평신도 수준에서 정신분석 이론을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고자 한다. 무의식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굳이 마음으로 부인하고 거부하는 것”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41)라는 말씀은 의식적 자아(ego)는 원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신도 미처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도 모르는 육체적 내지 생물학적 본능(성욕, 식욕, 공격본능 등)의 힘이 너무 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무의식이며, 이드(id)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은 그런 이드의 속성은 죄와 악으로 보는 것 같다(갈라디아서 5:16~23). 여기서 육체의 일, 육체의 소욕 또는 육체의 욕심은 무의식과 이드의 힘이다. 자아(ego)는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마음의 부분으로,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아는 일도 포함될 것이다(로마서 1:2). 초자아(superego)는 양심, 완전함, 죄의식의 장소, 이상(ideal)을 의미하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를 자각하는 마음, 양심, 그리고 “너희는 완전하라”(창세기 17:10)는 말씀과 유사하다. 프로이트는 초자아가 부모/사회의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하였으나, 기독교인은 도덕,양심, 완전함 등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가족이 네 원수니라”는 말씀(마태복음 10:34~37)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어릴 때의 가족(부모)과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경험이 이후 어른이 되었을 때 갈등과 노이로제의 원인(즉 죄를 짓는 원인)이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고, 부모의 배척은 자식을 분노하고 반항하게 만들 수 있다. 두 가지다 성인이 된 후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이라는 말씀은 정신분석적으로도 옳다. 본능적 욕망을 자아가 통제하지 못하면 계속 갈등하게 되고 우울증이 오거나 스트레스로당뇨병이나 고협압이 생길 수 있으며, 그 결과 자살이든 병사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라는 말씀(고린도전서 1:11)은 인격발달의 의미와 일치한다. 정신분석에서, 어른이 어릴 때의 마음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은 노이로제에 해당된다. 즉 의존심,자기애(narcissism), 본능의 표현 등은 대인관계나 사회관계에서 병적인 것으로 간주된다(프로이트는 자기애에 대한 이해를 엄청나게 넓혔다). 한편,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마태복음 18:2)의 “어린 아이” 마음이란 노이로제(갈등과 괴로움) 이전의 순수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창세기 2:18)는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제안은 남녀의 결합, 즉 결혼이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창세기 2장23-24)은 정신분석적 교훈과 일치한다. 이는 정신성발달과 성 기능의 발달과, 독립, 성 정체성, 건강한 남녀간 성교와 오르가즘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부모와 같이 살던 집을 떠나는 것이기도 하고, 부모와의 이차적 탯줄을 끊고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 사람의 완전한 독립된 성인이 되어 결혼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은 어릴 때의 일을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노이로제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노이로제가 있으면, 사랑에서 완전한 한 몸을 이루지 못하고, 자타의 경계가 없어지는 진정한 오르가즘을 경험하기 어렵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요한복음 8:32)은 정신분석적으로는 내면의 감추어진 마음, 억압된 욕망, 잊혀진 과거 등을 알게 되면(통찰하면) 노이로제로부터 벗어난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성경적으로는 여기서의 진리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통적인 예는 수없이 많다. 그 이유는 성경이나 정신분석은 일차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고통과 병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기 때문이다. 단지 궁극적인 목적이 다르다. 정신분석은 노이로제를 치료하고 정신건강을 획득하는 것이고, 기독교 신앙은 구원과 영원한 행복과 영생을 지향한다.

유아 성욕론도 오해할 필요가 없다.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 입술과 혀와 구강의 점막의 느낌이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는행복감을 느끼는데, 이는 결코 성적 쾌락이 아니다. 그런데 이 생명유지의 행복감이 성인이 된 후 남녀가 키스로 경험하면 에로틱하게 느껴 진다. 프로이트는 어릴 때 무슨 이유로 엄마-아기 간의 젖 빠는 쾌감이 거부된 아이는 커서도 여성과의 성 관계가 원만하지 않게 된다는 임상적 관찰을 했다. 그래서 유아성욕론과 정신성발달이론이 나온 것이다. 정신분석 이론뿐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남에게 감추기 위해서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인하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인간은 남을 비판하고, 자선을 베풀고, 성취하려 한다. 이런 행동은 투사, 대치, 보상, 등 방어기제를 통하여서이다. 아예 죄가 없다고 하는 행동에는 죄의식 없음, 순진성, 기억하지 못함 등이 있고, 그 방어기제는 억압, 부인 등이다.

정신분석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가능한 경지는 마음이 평온한 상태이다(불교에서 말하는 열반(nirvana)과 유사하다고 하는 학자가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으로는 이 땅 위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 성경의 교훈과 다른 정신분석 이론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성경)와 정신분석은 공통적이지 않다. 예를 들면 “진리와 자유”에서 진리는 마음속의 비밀이 아니라 또한 학문에서의 진리가 아니라,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고, 자유는 “억압”의 제거가 아니라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는 이론적으로는 정신분석의 최고 목표이기는 하나 실제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프로이트 그 자신 노이로제가 있었고 그 자신의 노이로제와 꿈의 분석으로 정신분석 이론 구성에 기여하였다. 그가 죽음에 임박하였을 때 마음에 자유함과 평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서 환자들이 신을 말할 때 그 신에 대한 이미지는 그들의 환상(illusion)이었음을 간파하였다. 그는 이 통찰을 확대 적용하여, 󰡔환상의 미래󰡕라는 저술에서 “신이라는 것은 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실재하는 초월적 존재도 아니며 이성의 최종 결과로 나온 산물도 아닌, 가장 오래되고 간절한 인류의 소원이 투사된 환상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무신론 역시 프로이트 자신의 환상이다. 프로이트 같은 천재들은 신을 인정하기 어렵다. 인본주의(humanism)는 인간들의 자기애(narcissism)같아 보인다. 또한 정신분석의 “이론”은 개개 환자의 “치료”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한 환자의 내면을 드러내어 환자에게 보여주는 치료기법일 뿐이다. 정신분석이라는 기술 자체가 종교의 정당성을 인정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만일 어떤 환자가 이혼하고 싶지만 하나님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겠다고 할 때 정신분석가는 “그 환자가 말하는 하나님”이 과거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하였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닌지 통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이혼하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즉 프로이트의 무신론은 실제 신의 존재와는 상관없다. 신의 존재가 정신분석으로 입증되거나 부정될 일도 아니다. 그래도 정신분석가들에게 남는 문제는 왜 인간은 그런 신에 의한 구원의 소원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생존 때문이라면, 생명의 기원과 죽음 이후의 일도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 정신분석은 우리의 과거 경험이 현재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과 다르다(정신분석적 결정론은 또한 기독교의 예정론과도 다르다고 보는데, 필자는 신학자가 아니어서 말하기에 한계가 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예정하시고 인도하시며,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로서 그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변화한다고 말씀하신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무의식(이드)을 의식화, 즉 본인이 알게 함으로써(통찰) 완료된다. 이후 그 발견된 바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해서는 정신분석의 교훈은 별로 없다. 프로이트는 내면을 알게 되면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 문제가 해결된다고만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환자는 자신의 내면을 통찰함으로써(진실을 알게 되어) 더 괴로워질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힘들어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정신분석을 하지않도록 말리거나(그래서 3회 정도 진단적 분석을 하고 정신분석의 적합성을 판단하여 그만 두든지 계속하든지 한다), 환자 수준에 따라 내면을 드러내기보다 감추어 주는 쪽으로 정신치료 할 수 있다(이럴 경우를 지지적 정신치료 또는 억압적 정신치료라 한다). 충분히 자아가 강건한 사람은 정신분석을 통해 발견된 내면의 고통스러운 비밀을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 과정을 분석이 끝난 후의 훈습(work-through)이라 이름하였다. 그래서 훈습까지 포함하면 정신분석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프로이트의 충고 중 하나는 인간의 이성으로 무의식의 힘을 성숙한 방어기제인 승화(sublimation)를 통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정도였다. 예를 들어 성적 욕망은 문학이나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 공격본능(타나토스)은 스포츠나 경쟁이나 투쟁에 의한 사회적 성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가혹한 초자아에 대해 유머(humor)라는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꿈은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의 표현으로 보지만 기독교에서는 꿈을 계시로 볼 때가 있다. 치료에서 자유연상은 하나의 고전적인 정화작용(catharsis)이 될 수있고, 기독교의 회개과정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자유연상은 특별한 의도가 없는 무엇이든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이고, 회개는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하나님께 말하는(고백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독교와 정신분석은 이론과 방법에서 모두 다르다. 정신분석은 삶의 문제를 정신병리라고 본다. 임상적으로는 “노이로제”이다. 기독교는 삶의 문제를 “죄”로 본다. 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은 노이로제를 치료하려 한다. 기독교의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건강이고, 기독교의 목표는 구원이다.

정신분석은 세속적 휴머니즘과 인간이성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사상의 이상은, 인간은 창조된 바가 아닌, 자연의 일부로서의 영원함이다. 휴머니즘에서의 인간의 목표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개인의 잠재력으로 성취하는, 인간의 자기-개선이다. 이는 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 자유사상에 기초한다. 따라서 정신분석은 하나님 말씀의 충분함을 부인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1-32) 하시었다.

3. 정신분석과 성경적 방법의 차이

통찰은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 목표는 마치 미처 모르고 있는 죄를 깨닫는 회개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프로이트는 자기를 알고(self-awareness)(통찰하고) 자아의 힘(ego strength)이 있으면, 노이로제를 극복하고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정신건강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은 진실한 건강은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서 온다고 믿는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 앎(self-awareness)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온다(히브리서 4:12). 프로이트는 정신건강을 논할 때, 자아 중심적(ego-centric)이었고, 적응과 평온와 생존이 목표였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았다. “이웃을 사랑함“은 기독교인의 영적 건강에 기본이다(요한복음 13:34.). 진정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우리의 과거 상처를 고치시고, 기능을 변하게 해 주셔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권능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신다(요한복음 8:32). 성령은 그 일을 정신분석가에게 맡기시지 않으실 것이다. 기독교인이 볼 때, 정신분석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회피하게 하고, 죄의 개념을 무시하도록 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 같다. 성경은, 죄인은 전문가(목사나 신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인간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신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이며, 죄의 치유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개와 믿음이다(로마서 12:2).

예수께서는 “놀라운 상담가”(Wonderful Counsellor)이시다(이사야9:6). 이런 신령한 상담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프로이트나 정신분석가 융, 또는 아들러, 그리고 상담가 칼 로저스(Carl Rogers, 1902~1987) 또는 기타 기독교를 부인하는 전문지식인들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길을 밝히 비추시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신다(시편 119:105).

성경은, 성경이 다음 네 가지에 유용하시다 말씀하신다(디모데후서3:16). 즉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teaching)과 책망(rebuking)과 바르게 함(correcting)과 의로 교육(징계)하기(training inrighteousness)에 유익하다. 성경의 목적은 하나님의 종으로 선한 일을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시키는 것이다(디모데후서 3:17). 정신건강은 부산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기독교에서 죄를 사하게 되는 회개(고백, 또는 고해성사)는 정신분석과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신분석은 고통받는 자가, 원치 않은 고통을 주는 정신장애에 대해, 자유연상으로 환상이나 꿈등 무의식의 내용을 통찰하는 과정이며, 그 치료과정에서 과거력이나 환경의 영향을 고려한다. 그러나 원죄개념은 없다. 정신분석은 “죄”보다 죄의식을 문제 삼는다. 반면 기독교는 고통의 원인에는 개인적 행동에 의한 죄뿐 아니라기본적으로 원죄가 있으며, 모든 죄는, 깨닫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과거력이나 환경은 문제 삼지 않고, 은총으로 죄를 사하고 구원해 준다고 약속하시었다. 단 고백 이후 죄

와 악에 대해 의지(will)로 다시 그러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고 고통스런 투쟁적 자제심을 발휘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죄 문제에 있어 정신의학이 “의지의 힘”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과학으로서 약점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신분석도, 죄의 고백과 비슷하게, 정신장애에 대한 치유 효과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분석가 앞에서 자유연상을 통해 죄와 악을 통찰한다고 해서 영적으로 개선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기독교는 이전보다 정신건강이 좋아졌다고 해서 무죄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 속죄함을 받아야 해결되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는 병은 자기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속죄를 요구하지 않고 벌도 주지 않는다.

4. 정신분석의 쇠퇴와 변신

현재 정신분석은, 과학적 내지 임상적(empirical) 증거부족으로 신경과학과 인지과학 등에 의해 의학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즉, 정신분석이 과학이라고 주장되었지만, 과학 같지는 않다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그 이유는 정신분석은 그 가설을 작동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데(operationalize), 또는 경험적 방법으로 검증하는데, 또는 과학적 근거를 얻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에서도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전문 분석가들도 줄어들고 있다. 소비자들 편에서도 정신분석은 오래 걸리고 치료비도 비싸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정신분석이 효과적이라는 증거를 찾았다고 말하는 연구자도 있다. 정신화를 주장하는 Peter Fonagy 같은 정신분석가는 고전적 정신분석이 과학적이라는 임상적 증거를 제시하고 못하고 있지만, 단기 정신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증거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의학에서 치료기술로서 정신분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낮아져 왔다. 대신 정신분석에 기초하되 단기간의 “역동적” 정신치료가 개발되고 있다. 정신분석가 Aaron Beck는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를 개발하였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행동치료(behavior therapy)라는 정신치료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임상심리학자들이 정신분석에 근거하여 상담학을 발전시켰다. 인지치료와 행동치료를 통합한 인지행동치료(cognitive-behavioral treatment. CBT)가 개발되어, 정신과 의사들도 이 CBT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정신과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 중에는 아직 전통적 정신분석을 경험한다. 정신분석은 아직도 정신의학의 중요한 전통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 변화에의 시도

이제 정신분석가들 중에서, 정신분석이 살아남기 위해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기 시작하였다. 그중 첫째는 정신분석에 근거하지만, 임상적 증거들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는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으로 발달하는 길이 있다. 둘째 발달하는 최첨단 신경과학(neuroscience)과 통합하는 신경정신분석(neuropsychoanalysis)으로의 발달이 있다. 즉 프로이트의 이론이 뇌영상으로 확인될 수 있으며, 꿈 현상도 뇌파상으로 나타나는 REM수면으로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즉 신경정신분석가는 신경과학의 발견이 정신분석이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이제 초기 단계이다. 한편 전통주의자들은 프로이트의 포도주가 신경과학의 물로 희석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편 신경과 학자들은 정신분석을 심리학으로 보고 인지과학으로 접근하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기억의 화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콜럼비아대학 정신과의사 Eric Kandel은 정신분석이론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에 동조적이다(그는 신경과학자가 되기 전에 정신분석가가 되려고 하였다). 한편으로는 정신분석은 전통적인 정신현상의 적절한 해석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견해도 있다.

(2) 현대 사조와의 관계

초기부터 정신분석의 지적 세계는 인문학(humanities)과 비슷했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이 대화로 진행되며, 환자의 과거 경험이 현재의 노이로제 발생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것이 역사연구와 비슷하며, 상징이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문예비평과 비슷하다. 이런 일은 요즘 말로는 나레이티브(이야기) 연구이며, 역사, 문학 그리고 비평과 매우 공통적이다. 즉 매우 인문학적이다. 프로이트도 초창기부터 정신분석 이론을 토템, 타부, 종교현상 등 문화인류학이나 예술과 문학 비평에 사용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hermeneutics(성경인 문학 텍스트의 해석에 대한 학문)의 방법과 유사하다. 즉 가설과 관찰에 대한 경험적 증명보다, 현상의 의미 있는 해석에 포커스를 둔다. 프로이트 이후 전형적 정신분석 논문은 예시와 더불어 추론(speculation)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문학이론(literary theory)과 비판(criticism)의 방법과 유사하다.

그리하여 현재는 정신분석연구소들은 그 수련과정이나 세미나에 정신과의사나 심리학자 이외 다른 인문학자들과 기타 다른 학파의 사람들에게도 문을 열어놓고 있다. 정신분석과 현대 인문학과의 관련성은, 빌헬름 라이히의 성혁명이론, 에리히 프롬과 마르쿠제 같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critical theory)과 신맑스주의(neo-marxism),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과 미셀 푸코의 철학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즉 거의 모든 현대 사상가들은 프로이트의 억압이론, 특히 성을 억압하여 노이로제가 생기므로, 정신분석을 통해 억압을 통찰하여야 한다는 것을 성의 억압에서 해방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였다. 프로이트를 계승하였다고 하는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독특하고 난해한 그래서 논란이 많은 정신분석 이론을 말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의학의 정신치료 분야보다, 인문학 전문가나 문학예술가들 또는 후기 구조주의적 지식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정신분석은 치료라는 본래의 의학에서 더욱 멀어져 있다. 이런 현대 사조들의 출발점으로서 정신분석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이드의 충동을 승화같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나아가도록 “이성적으로” 충고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즉 프로이트는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부인은 성욕을 참지 말고 맞바람을 피우라고 권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성혁명 사상이나 비판이론이나 푸코의 주장은 프로이트를 핑계로 모든 종류의 성적 욕망을 해방시키라는 것이다. 이런 현대 사조들은 반 이성적이며, 반 과학적이며 또한 당연히 반 기독교적이다. 거꾸로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현대 사회문화에 대한 이론이나 비판이론은, 스스로의 문제를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방어기제는 지능화(intellectualization), 또는 합리화(rationalization)라 한다. 그 사회적 문제란 개인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즉 인류의 욕망과 죄와 멸망의 문제이다. 기독교적으로 보면 인류의 문제는 그런 인간적인 통찰과 방어기제로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성혁명과 프리섹스 이론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인류사회를 윤리적으로 타락시키고 정신장애와 신체질병을 만연케 함으로써 문명을 붕괴시킬 가능성을 높일 뿐이라 생각된다(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자동차 미세먼지도 현대 인간 이성의 산물이다).

5. 맺는말 – 정신분석은 하나의 도구이다

최근 기독교와 정신분석간의 상호이해와 대화를 강조하고, 심지어 통합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는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정신분석의 기초가 자연과학, 신경생리학 및 계몽주의에 있고,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발전된 것으로 기본적으로 유물론적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몰라도, 통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즉 기독교와 정신분석은 차원이 다르다. 회개를 요하는 죄 문제와 정신분석을 요하는 신경증적 장애를 분별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과학, 특히 정신의학이나 정신분석을 신앙과 갈등시키기보다, 또는 통합하려 하기보다, 사람을 돕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면 된다고 본다. 목회나 기독상담을 위해, 정신분석 이론이나 기법은 우리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기법적 도구(technical instrument)이다. 이는 마치 의사가 수술칼로서 몸의 종기를 치료하는 것에 비유된다. 칼로 종기를 째고 그 속에 갇혀있는 고름을 빼내고 다시 봉합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몸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상담 또는 기독교적 상담은 인본주의적 내지 인간이성에 기반하는 정신분석 이상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정신분석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 흥미 있는 비유가 있다. 한 사람이 집안의 귀신들을 다 쫓아내고 집을 깨끗이 한 후 여행을 떠났다. 쫓겨난 귀신이 다시 이전 집에 와본즉, 집안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어, 잘 되었다 싶어 다른 귀신들을 불러 그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마음에서 이드를 청소한 후 대신 성령을 모시어 들이는 것이다. 정신분석에 성경의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를 분별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 상담가들은 다양한 심리학 이론들뿐 아니라 성경을 공부하여 알고 있어야 한다. 알아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미혹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교회는 정신분석에 기초하여 발달하고 있는 반기독교적 현대 사상들과 사조에 대한 경계와 연구가 필요하다. 이상은 임상가로서의 필자 개인의 소견이다. 잘못된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정신분석 전문가와 기독교학자들과의 토론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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